언제나 게을렀던 나. 농담삼아 하는 소리지만 포잡 생활을 하게 되면서는 당연하게도 기록도, 그나마 꾸준히 하던 하루를 정리하던 기도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매일 새로운 설렘을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아기라는 존재에 익숙해지면서, 즐거워하며 수다를 떨긴 하지만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는 않게 되었고 자연히 내 아기의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도 그저 흘러가게 두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직 머물러있는 모습들. 그리고 내 감정들. 문득 찾아온 변덕스러운 심리에 기대어 적어본다.
아기는 여전히 내가 키운다. 어린이집에 보내라는 권유가 무척 많은데 내가 못 보낸다. 가치판단의 결과는 아니었고 내 성격이 그렇다. 아기를 낳는 날까지 고민했지만 낳자마자 답을 알았다. 그 순간까지 떠올렸던 잃어야 할지도 모를 모든 것을 미루거나 혹은 영원히 포기하더라도 내가 키우고 싶었다. 남편을 선택할 때와 비슷한 확신이었다. 아직은 그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그 선택을 희생이라느니 하는 말로 쓸데없이 포장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한 거다.
왜 쓸데없는 기록을 했지? 새벽이라 그런가. 그냥 아기 얘길 적어야겠다. 얼마전 아기와 있었던 일 중 유독 기억나 자꾸 입에 담게 되는 일화들이 몇 개 있다.
놀이를 하러 나서는 아기가 내 신발을 들고 내밀길래 먼저 나가 놀고 있으면 엄마가 일 해 놓고 나갈게 약속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기는 날 두고 착하게 놀러 나섰다-노파심에 덧붙이지만 당연히 보호자께서 계셨다-. 내 준비가 끝나기 전에 아기가 돌아왔고 현관에서 아기는 날 보자마자 내 신발을 들고 땅에 탁탁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외출 후에 그런 일을 한 건 처음이었고,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그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혹은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한 아기의 항의가 확실했다. 몇 번이나 설명과 사과와 다짐을 하고 아기는 딱히 내게 화를 내거나 떼를 쓰지도 않고 여전히 살가웠으나 아주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아직 그 표정과 손짓, 소리가 선하다.
요즘 종종 배변을 하는 바깥 장소가 있는데 자주 들르는 곳이다 보니 그곳 주변의 지리를 훤히 안다. 근처에 가면 제가 앞장서 웃거나 재잘대며 뛰듯 걷는다. 배변을 하고 나면 후처리를 하는 곳으로도 제가 앞장서 똑바로 간다. 아기의 뇌리에 다양한 고유경로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어려운 발음의 단어를 다르게 발음하는게 몇 개 있는데 그게 아주 재미있다. 시옷, 치읓, 히읗 등이 주로 생략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단어마다 제 나름의 억양도 있는데 그것도 매우 사랑스럽다.
숫자를 물어보면 웃으며 달려가 가리킨다. 두 개를 가끔 헷갈려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야 나는 두 숫자의 유사성을 깨달았다. 예전엔 둘이 꽤 닮았음을 전혀 몰랐지.
칫솔질을 즐거워 한다. 해달라고 칫솔 있는 곳을 막 가리킨다. 그렇게 저항할 땐 언제고 이젠 제가 칫솔을 쥐고 입에 집어넣고 제 나름의 칫솔질도 한참 한다. 사실 예전이 더 깨끗이 닦였던 거 같기도 하지만 아기가 워낙 즐거워하니 제가 더 많이 하게 둔다. 시작과 마무리는 꼭 내가 하지만 어째 점점 빨리 뺏긴다.
의외로 오래 가는 기억 하나는, 젖 먹는 모습의 변천사와 변한 듯 하지만 묘하게 일관성이 있는 젖 조를 때의 혹은 젖 먹기 전의 설레하고 좋아하는 표정. 많이 달라졌지만 뭔가 같아. 정확히 그려낼 수는 없지만.
상당히 길게 적어버렸네. 자야겠다. 언젠가 또 이 글을 보며 웃겠지. 좋은 변덕이야.
아기는 여전히 내가 키운다. 어린이집에 보내라는 권유가 무척 많은데 내가 못 보낸다. 가치판단의 결과는 아니었고 내 성격이 그렇다. 아기를 낳는 날까지 고민했지만 낳자마자 답을 알았다. 그 순간까지 떠올렸던 잃어야 할지도 모를 모든 것을 미루거나 혹은 영원히 포기하더라도 내가 키우고 싶었다. 남편을 선택할 때와 비슷한 확신이었다. 아직은 그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그 선택을 희생이라느니 하는 말로 쓸데없이 포장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한 거다.
왜 쓸데없는 기록을 했지? 새벽이라 그런가. 그냥 아기 얘길 적어야겠다. 얼마전 아기와 있었던 일 중 유독 기억나 자꾸 입에 담게 되는 일화들이 몇 개 있다.
놀이를 하러 나서는 아기가 내 신발을 들고 내밀길래 먼저 나가 놀고 있으면 엄마가 일 해 놓고 나갈게 약속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기는 날 두고 착하게 놀러 나섰다-노파심에 덧붙이지만 당연히 보호자께서 계셨다-. 내 준비가 끝나기 전에 아기가 돌아왔고 현관에서 아기는 날 보자마자 내 신발을 들고 땅에 탁탁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외출 후에 그런 일을 한 건 처음이었고,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그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혹은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한 아기의 항의가 확실했다. 몇 번이나 설명과 사과와 다짐을 하고 아기는 딱히 내게 화를 내거나 떼를 쓰지도 않고 여전히 살가웠으나 아주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아직 그 표정과 손짓, 소리가 선하다.
요즘 종종 배변을 하는 바깥 장소가 있는데 자주 들르는 곳이다 보니 그곳 주변의 지리를 훤히 안다. 근처에 가면 제가 앞장서 웃거나 재잘대며 뛰듯 걷는다. 배변을 하고 나면 후처리를 하는 곳으로도 제가 앞장서 똑바로 간다. 아기의 뇌리에 다양한 고유경로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어려운 발음의 단어를 다르게 발음하는게 몇 개 있는데 그게 아주 재미있다. 시옷, 치읓, 히읗 등이 주로 생략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단어마다 제 나름의 억양도 있는데 그것도 매우 사랑스럽다.
숫자를 물어보면 웃으며 달려가 가리킨다. 두 개를 가끔 헷갈려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야 나는 두 숫자의 유사성을 깨달았다. 예전엔 둘이 꽤 닮았음을 전혀 몰랐지.
칫솔질을 즐거워 한다. 해달라고 칫솔 있는 곳을 막 가리킨다. 그렇게 저항할 땐 언제고 이젠 제가 칫솔을 쥐고 입에 집어넣고 제 나름의 칫솔질도 한참 한다. 사실 예전이 더 깨끗이 닦였던 거 같기도 하지만 아기가 워낙 즐거워하니 제가 더 많이 하게 둔다. 시작과 마무리는 꼭 내가 하지만 어째 점점 빨리 뺏긴다.
의외로 오래 가는 기억 하나는, 젖 먹는 모습의 변천사와 변한 듯 하지만 묘하게 일관성이 있는 젖 조를 때의 혹은 젖 먹기 전의 설레하고 좋아하는 표정. 많이 달라졌지만 뭔가 같아. 정확히 그려낼 수는 없지만.
상당히 길게 적어버렸네. 자야겠다. 언젠가 또 이 글을 보며 웃겠지. 좋은 변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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